- 데이터센터보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시민과의 신뢰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1889년 발표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을 상징하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렇게 부자로 죽는 사람은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카네기는 부자가 거대한 재산을 개인의 소유물로만 여겨서는 안 되며, 살아 있는 동안 공동체를 위해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는 재산의 절대적 주인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잠시 맡은 부를 관리하는 ‘수탁자’라는 생각이었다. carnegie.org
그가 미국과 영어권 곳곳에 도서관과 대학, 연구기관, 공연장 등을 세우는 데 재산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단순히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을 넘어, 시민 누구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남기려 했다.
물론 카네기의 삶이 완전무결했던 것은 아니다. 철강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갈등과 부의 축적 방식에 대한 비판도 컸다. 그렇기에 그의 사회공헌은 또 하나의 교훈을 남긴다. 기업의 기부가 사업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책임을 모두 지워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사회공헌은 돈을 내놓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사업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질문에 어떤 태도로 답하며, 성장의 결실을 어떻게 나누는가까지 포함해야 한다.
록펠러·버핏·게이츠가 남긴 사회공헌의 방식
석유왕 존 D. 록펠러 역시 독점과 노동 문제를 둘러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13년 록펠러재단을 세워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 질병과 빈곤 같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 했다.
재단은 미국 남부의 구충병 퇴치와 황열병 백신 연구, 공중보건 체계 발전 등에 힘을 보탰다. 일회성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는 데 재산을 투입한 것이다. rockefellerfoundation.org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재산을 자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대신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06년 게이츠재단에 약 300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이어 2010년 빌 게이츠,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와 함께 세계의 부유한 개인과 가족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생전이나 유언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도록 권하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출범시켰다. gatesfoundation.org
이들의 사례를 무조건 미화하자는 뜻은 아니다. 막대한 부의 집중과 기업 활동의 공정성은 사회가 계속 따져 물어야 할 문제다. 다만 이들이 보여준 공통점은 분명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행사가 끝난 뒤 사진 한 장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하도록 기반을 제공한 사회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동해 AI 데이터센터, 지역사회가 거는 기대
지난 7월 6일 강원특별자치도와 동해시, ㈜GS는 동해 AI 데이터센터 조성과 AI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역시 이날 협약 체결 사실과 사업 추진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강원특별자치도청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해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이번 사업은 단순한 대기업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업체가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 지역주민의 일자리는 얼마나 만들어지는지, 완공 후 상주 인력과 유동인구가 지역 상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과 용수는 어떻게 공급되는지, 지역 기반시설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환경과 안전 문제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기대가 큰 사업일수록 질문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지역 주민의 질문은 사업을 방해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사업의 성공을 함께 확인하고 싶은 정당한 관심이다.
시사K뉴스의 공개질의에 답이 없었다
시사K뉴스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GS 측에 동해 AI 데이터센터 조성과 관련한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9월 15일까지 회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질문의 취지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사업권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업체 참여와 고용 창출, 지역경제 기여 방안, 소상공인과의 상생, 전력·용수 공급과 환경 대책 등 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사K뉴스가 요청한 회신 기한까지 GS 측의 공식적인 답변은 도착하지 않았다.
답변하지 않는 것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사업이 지역의 행정적 지원과 기반시설, 주민의 이해와 협조를 필요로 한다면 침묵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회신이 어렵다면 “현재 검토 중”이라고 알릴 수 있다. 사업 초기라 확정되지 않은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답하면 된다.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시민들은 모든 사업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공개하고, 공개할 수 없는 것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화를 시작하는 최소한의 태도다.
기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설명하는 책임’
많은 대기업이 장학금 지원과 취약계층 후원, 환경정화, 명절 물품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활동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대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행사성 기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업 계획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지역사회가 우려하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과 이익을 함께 논의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공헌이다.
소통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이 지역사회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기업이 주민을 사업 추진에 필요한 동의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상생은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주민을 사업의 동반자로 존중한다면 질문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성실하게 답할 것이다.
기업의 침묵은 자칫 오만으로 읽힐 수 있다
GS 측이 어떤 사정으로 답변하지 않았는지 시사K뉴스는 알 수 없다. 담당 부서에 질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업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답변을 미뤘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 차례의 무응답만으로 기업 전체의 의도나 태도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설명 없이 침묵이 길어지면 시민들은 이를 무관심이나 회피, 나아가 오만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업이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소통하지 않는 태도 자체가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는 거대한 서버와 건물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통신망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신뢰가 필요하다.
기업이 지역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부지와 기반시설만이 아니다. 주민의 이해와 행정의 협조, 지역사회의 안정성도 중요한 사업 자산이다. 그렇다면 기업 역시 지역사회에 정보와 신뢰, 참여 기회와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
GS에 다시 묻는다
시사K뉴스는 GS 측에 무리한 약속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업을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며, 기업의 기술과 계약, 투자전략 등 정당한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민들이 묻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해 달라는 것이다.
- 동해지역 업체와 인력은 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 지역 청년을 위한 채용과 교육 계획은 있는가.
-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지역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돌아갈 방안은 무엇인가.
- 전력과 용수, 환경과 안전 문제는 어떤 원칙으로 관리할 것인가.
- 지역사회와 지속해서 소통할 공식적인 창구를 마련할 의향은 있는가.
답변이 곧 법적 약속이 될까 우려된다면 현재 단계에서의 방향과 원칙만이라도 설명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답변이 아니라 시민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태도다.
진정한 상생은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오늘의 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시대도, 산업도, 기업을 둘러싼 제도도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부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도 커진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재산을 많이 기부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사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며, 성장의 기회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동해 AI 데이터센터는 지역경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은 사업이 좌초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적으로 추진돼 양질의 일자리와 산업 기반을 만들고, 침체된 지역 상권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투명한 설명과 진정성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
GS가 형식적인 사회공헌을 넘어 사업 초기부터 지역사회와 질문을 나누고 답을 찾는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 침묵에서 설명으로, 일방적인 추진에서 대화로, 기업 중심의 투자에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협력으로 태도를 전환하기를 기대한다.
동해에 세워져야 할 것은 AI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시민과 기업 사이에 신뢰가 세워져야 한다.
— 시사K뉴스 기자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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