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된 부실선거와 국민 불신 속에서도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선관위 개혁. 국회 입성 직후 감사·책임·투명성을 위한 법안 발의를 예고하며 '좋은 정치'의 실천에 나선 한동훈 의원의 승부수.
선관위의 독립은 방패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다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그것도 전국 곳곳에서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투표용지가 부족해 기다리고, 일부는 투표하지 못했다는 진술까지 수사 대상이 됐다. 서울 송파구 잠실 투표소 혼란은 상징적 장면이 됐고, 경찰은 이미 투표하지 못한 시민 조사를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입구에서 국민을 세워둔 사건이다.
선거는 결과만 공정하면 되는 절차가 아니다.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가 승복된다. 그런데 선관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부실 관리 지적을 받았고, 언론과 시민사회는 반복해서 경고했다. 그럼에도 개선은 더뎠고, 결국 이번에는 ‘참사급 부실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까지 “신뢰 잃은 선관위는 존재 의미가 없다”는 취지로 유감을 표하고 수사를 지시했다.
더 주목할 대목은 거리의 반응이다. 잠실 현장에는 청년들이 대거 모여 참정권 시위를 벌이고, 일부는 재선거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전남 대학 총학생회들도 “참정권 침해”라며 책임자 문책과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이것은 단순한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가 묻고 있다. “내 한 표는 안전했는가.”
그런 점에서 한동훈 의원의 선관위 개혁법안 예고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을 찌른다. 그는 감사원이 선관위의 채용·복무·예산 등 행정 영역을 감찰할 수 있게 하고, 선거 기간 선관위 직원들의 무분별한 휴가·휴직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선관위원장을 비상임 명예직이 아닌 상임 책임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핵심은 하나다.
선관위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관위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한다. 정권이 선거관리기관을 흔들면 민주주의는 더 위험해진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책임의 면허가 아니다. 감사를 거부하고, 외부 통제를 피하고, 내부 책임자는 흐릿한 구조로 남아 있다면 독립기관이 아니라 성역기관이 된다.
감사원 감찰 문제는 헌법적 논쟁이 있다. 선거관리 고유 업무까지 감사원이 들여다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채용, 예산, 계약, 복무, 휴직 같은 일반 행정 영역까지 “독립성”이라는 이름으로 막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수록 더 투명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부정선거 단정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이 선거관리기관을 믿지 못하게 된 현실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언론이 지적했고, 국민이 불안해했고, 현장에서 문제가 반복됐지만 국회는 선관위 개혁을 정쟁의 언저리에 방치했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 국회에 입성한 한동훈 의원이 개혁 법안을 예고했다. 이 점은 평가해야 한다. 늦었지만 필요한 논의다.
선관위는 민주주의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 투표용지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관이 “독립성”만 말한다면 국민은 납득하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제도개혁이다.
분노를 거리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옮겨야 한다.
선관위 개혁의 원칙은 분명하다.
선거 업무의 정치적 독립은 보장하되, 조직 운영의 행정적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참사를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민주주의 보강의 계기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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