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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뤽 아우프(Glück Auf), 그 인사말 속에 담긴 1천 미터의 기억"

  • #지형덕 기자
  • 입력 2025.06.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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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에서 만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말하는 '삼척 도계광업소'

“글뤽 아우프(Glück Auf)!”

지난 6월 28일,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식당. 강원특별자치도 유럽 방문단과 함께 모인 재독 강원도민들, 특히 파독 광부 출신 어르신들의 인사말은 모두 똑같았다. 독일 광부들의 인사인 ‘글뤽 아우프’. 뜻은 “무사히 올라오라”. 1,000m 아래 지하 막장에서 매일 목숨 걸고 일했던 광부들이 서로를 위해 건네던 간절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날, 그 인사에 어르신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가를 훔쳤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이 있었다”

1963년 겨울, 한국 정부는 독일과 협정서를 맺고 첫 번째 파독 광부들을 독일로 보냈다. 123명으로 시작된 이 파견은 1977년까지 총 7,936명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 같지만, 당시 이들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한 실질적 영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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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언제나 ‘삼척 도계광업소’였다. 파독을 앞둔 광부들은 도계와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실습을 거쳐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계광업소는 일종의 ‘입대 전 훈련소’ 같은 역할을 했던 셈이다.

“당시엔 교육도 3~4일이면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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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훔에서 만난 김태석(81) 어르신은 1970년 도계에서 광부 교육을 받았다. “원래는 6주 교육이 원칙이었지만, 독일 인력이 워낙 부족해서 며칠 만에 교육 끝내고 독일로 보낸 경우가 많았죠”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엔 생생한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는 당시를 “진짜 전쟁터 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가난했고,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어요. 도계는 그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죠.”

 

 한 달 월급, 한국 평균의 8배

파독 광부는 당시 평균 650950마르크를 받았다. 지금 가치로 보면 약 13만19만 원이지만, 이는 당시 한국 직장인 평균의 8배였다. 

동해 출신 손재남(83) 어르신은 “간호사는 5배, 광부는 8배 임금을 받는 기회였어요.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처럼, 청년들이 도계로 몰려들었죠”라고 회상했다.

정부도 그들의 선택을 뒷받침했다. 1961년, 독일에서 상업차관 1억5천만 마르크를 받고, 그 대가로 인력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간호사들은 1966년부터 파견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독일 병원의 버팀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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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도계, 그리고 ‘기억의 광산’

도계광업소는 이제 문을 닫는다. 지난해 태백 장성광업소에 이어 6월 30일이면, 공영 탄광은 모두 역사가 된다.

“이젠 우리가 기억하는 탄광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장 심동간(72)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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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고향이 삼척 도계라는 김순복(86) 재독강원도민회장은 “그땐 독일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전국에서 청년들이 몰려들어 건강검진 받던 기억, 지금도 선명해요”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간호사로 파견되어 독일인과 결혼, 55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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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헌신을 유네스코 역사로”

앞서 에센의 파독광부기념관을 방문한 김진태 강원지사는 방명록에 “재독 광부·간호사 여러분의 삶의 흔적을 대한민국의 역사, 유네스코의 역사로 만들겠다”고 남겼다.


강원도의회 김시성 의장은 “그 헌신, 국민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적었고, 문관현 기획행정위원장은 “숨은 영웅이자 산업전사였던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MZ가 기억해야 할 이름, ‘도계’와 ‘글뤽 아우프’

탄광은 사라질지 몰라도, 거기서 태어난 말 하나는 남았다.

“글뤽 아우프.”

산업화와 이민, 국제협력, 청춘의 선택,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묵묵히 내려갔던 그곳에서—

우리는 이 말을 다시 되새긴다.


“무사히 올라오길.”


지금 우리도, 그 삶 위에서 올라온 것이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올라오는 중이니까.

 

정리 | 지형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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